음식으로 떠나는 여행
이국적인 인테리어와 음식으로 국내에서도 해외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맛집을 찾았다.
이곳은 베트남, 남박
남영동에는 아침 8시, 쌀국수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 큰길가에서 골목으로 살짝 들어왔을 뿐인데 빈티지한 느낌이 물씬 나는 푸른빛의 간판과 붉은 벽돌 건물의 외관이 베트남 현지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나무 테이블과 등받이 없는 의자, 심플한 메뉴판과 베트남어로 쓰인 각종 포스터와 그림으로 꾸며진 내부에 들어서자 이곳이 베트남이라는 확신마저 든다. 무심하게 툭 놓여 있는 듯하지만 반질반질하게 닦인 식기류와 각종 소스, 메뉴판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겹다.
메뉴 역시 단출하다. 메인 메뉴는 한우 쌀국수와 얼큰 한우 쌀국수고, 사이드 메뉴로 다진 돼지고기와 발효 페이스트를 활용해 만든 덮밥처럼 생긴 장밥, 그리고 몇 가지 샐러드가 전부다. 한우 사골과 양지로 12시간 이상 끓여낸 한우 쌀국수는 푸짐한 양만큼이나 고기도 듬뿍 올라가 있다. 국물은 향신료의 자극적인 향보다는 깊고, 구수해 감칠맛이 난다. 당근 라페는 상큼하게 입맛을 돋운다. 수육처럼 두툼한 쌀국수 고기와 당근 라페를 함께 먹었더니 새로운 요리를 맛본 기분이다.
남박은 신용산역에 베트남 음식 열풍을 일으켰던 효뜨를 만든 남준영·박지은 부부가 오픈한 곳으로 각자의 성을 따서 상호를 지었다. 효뜨를 운영하다 문득 베트남을 여행하며 자주 봤던 새벽녘에 문을 열어 한낮까지 영업하는 아침 식당이 떠올랐다. 그렇게 시작한 남박은 아침 8시에 오픈해 오후 3시 반이면 문을 닫는다. 출근하는 직장인, 해장이 필요한 이들이 이른 아침부터 쌀국수를 먹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그동안 모아온 특별한 소품들을 곳곳에 배치하고, 힘들어도 매일 육수를 끓이며 정성스럽게 만드는 한우 쌀국수와 토속적인 장밥 등을 개발해 이국적인 분위기를 완성했다. “우리가 매일 영위하는 의식주를 가장 조화롭고 포근하게 느끼길 바라는 마음으로 부부의 경험과 시간을 담은 공간”이라는 대표 부부의 말처럼 언제 찾아도 따뜻한 국수 한 그릇에 충전할 수 있는 식당이다.
주소 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76길 11-31
문의 인스타그램(@noodle.shop.service)
강렬한 스페인의 맛, 작은스페인
국내에서 해외 음식점을 찾는 이유는 매일 먹던 밥과 다른 낯선 음식에서 마치 여행을 떠난 듯한 설렘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가보지 못한 나라의 음식이라면 음식을 먹으며 그 나라의 분위기를 상상해보고, 이미 다녀온 나라라면 반가운 음식 한입에 여행의 추억을 회상하기도 한다. ‘열정적인 나라’ 하면 떠오르는 스페인 현지의 맛을 연희동 끝자락에 자리한 작은스페인에서 맛볼 수 있다.
투우사가 소 앞에 들이미는 천, 스페인 전통 춤 플라멩코 의상, 그리고 국기에도 그려진 붉은색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작은스페인은 매장 벽면을 과감히 붉게 물들였다. 그리고 스페인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포스터와 꽃 등으로 장식했다. 고기나 해산물, 채소를 넣어 만드는 스페인의 쌀 요리 파에야를 중심으로 새우와 올리브 오일로 만든 감바스 알 아히요, 스페인식 수제 햄 하몽을 올린 타파스까지 현지의 맛을 재현한 메뉴가 준비되어 있다. 어릴 적부터 스페인에서 자란 신현진 대표가 기억하는 맛에서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염도만 조절한 정도다. 파에야는 매끼 밥을 먹는 한국인에게 익숙한 쌀을 사용하지만 맛과 조리 과정은 천차만별이다. 따끈한 파에야에서는 해산물과 고소한 밥맛이 함께 느껴지고, 레몬을 뿌려 먹으면 풍미가 더욱 살아난다. 신현진 대표는 “파에야는 생각보다 조리 과정이 복잡하고 정성이 많이 들어가요. 하지만 쌀을 활용하기 때문에 한국인들에게 큰 감흥이 없을까봐 다른 메뉴보다 훨씬 연구를 많이 했답니다”라고 말한다. 그 덕분인지 최근에는 작은스페인의 공동 운영자이자 남편인 이창열 셰프가 스페인 2022 파에야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치열한 예선을 거쳐 전 세계에서 단 36명의 셰프만 뽑힌 터라 의미가 남다르다. 때로는 스페인어가 편할 만큼 스페인 문화가 익숙한 신현진 대표는 대학생 시절 처음 한국에 와서 스페인어학원을 운영하고, 쿠킹 클래스를 여는 등 15년 이상 스페인 문화를 국내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레스토랑 오픈 초기에는 현지 요리사를 초빙해 운영하다 지금은 모든 레시피를 전수받아 남편과 함께 운영 중이다.
“지금까지 15만 개 이상의 파에야를 만든 것 같다”는 신현진 대표의 말에서 자부심과 애정이 듬뿍 느껴진다.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로25길 37
문의 02-322-8870
영국식 정통 아침 식사, 진저앤트리클
이탈리아식 파스타와 피자, 홍콩식 만두, 대만 스타일 버블티 등 국내에서 맛볼 수 있는 해외 ‘스타일’ 음식은 현지의 맛과 얼마나 닮았을까? 아무래도 식재료부터 조리 방법 등에서 차이가 나니 온전히 그 나라의 맛을 즐겼다고 할 수는 없을 터. 영국인 셰프 마크가 운영하는 진저앤트리클에서는 이런 의심 없이 진짜 영국 정통 음식을 즐길 수 있다.
가드닝에 애정이 깊은 영국 출신답게 각종 식물 화분으로 싱그럽게 꾸민 테라스, 실내에도 크고 작은 식물과 벽마다 붙어 있는 아기자기한 액자, 홀 전체에 흐르는 비틀스 음악 등은 진저앤트리클만의 여유롭고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채식 메뉴를 구분하고, 한글과 영문으로 나눈 메뉴판에서부터 정성이 느껴지는 이곳은 통조림 식품을 지양하고, 대부분의 재료를 직접 만든다. 시판 제품과 차원이 다른 영국식 소시지와 베이컨을 시작으로 영국의 대표 요리인 블랙 푸딩, 풀드 포크는 물론 파스타 소스와 과일청, 잼까지 셰프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게 없다. 덕분에 색소나 인공향료, 보존제 등도 전혀 넣지 않아 건강하고 안심할 수 있는 식재료가 진저앤트리클 요리의 기반이 된다.
가장 전형적인 영국식 브런치 메뉴인 ‘에그베네딕트’는 유기농 사워도우 위에 육즙이 가득한 영국식 베이컨을 얹고, 홀렌다이즈 소스를 얹어낸다. 베지테리언에게 인기가 많은 ‘가든 스페셜’은 한쪽은 아보카도와 토마토, 수란을 다른 한쪽은 볶은 버섯과 양파, 수란을 얹은 오픈 토스트. 어떤 메뉴보다 진저앤트리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건 단연 ‘풀잉글리쉬 브렉퍼스트’다. 큰 접시에 소시지와 베이컨, 달걀, 구운 토마토와 버섯 등을 푸짐하게 올린 메뉴로 영국식 아침 식사가 궁금했던 한국인은 물론 고국의 맛을 그리워하는 외국인 손님도 찾는다. 소시지와 베이컨은 그동안 흔하게 먹어왔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풍미가 뛰어나 기분 좋은 고소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재료와 소스를 직접 만들고 손질한 정성이 자연스레 느껴지고 흡족한 포만감은 덤이다.
대표이자 셰프인 마크는 재료를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만 여러 세대를 거쳐 내려온 현지 레시피를 손님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 행복하다고. 평일 이틀(화, 수) 휴무에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인 짧은 영업시간을 감안하고도 늘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건 한입만 먹어도 음식 한 접시에 담긴 가치와 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주소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일산로441번길 41-17 1층
문의 010-9894-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