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차원의 세계, 이구아수 폭포
장대한 이구아수 폭포를 마주하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진다. 쉴 새 없이 물보라가 돌진하고 우레 같은 굉음이 귓전을 파고든다. 현실의 모든 걱정과 근심이 세상의 저편으로 몽땅 사라지는 듯한 광경은 가슴이 뻥 뚫리는 속 시원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한 달 남짓 남아메리카를 여행하며 ‘여행 만렙’에 가까운 스킬을 얻었다. 광막한 대륙을 가로지르는 동안 근육은 탄탄해지고, 몇 번의 고산병을 겪으며 대처 노하우를 터득했다. 매번 해야 하는 흥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감이 붙고, 온갖 돌발 변수를 처리하며 적당히 넘어갈 줄 아는 여유도 배웠다. 하지만 남미 여행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웅장한 대자연의 자태를 이토록 가까이, 더없이 생생하게 경험해본 것이다. 강인한 생명력을 응축한 남미의 자연은 한마디로 압도적이다. 잠시나마 그러한 자연의 일부가 되어보는 경험은 지금까지의 삶, 나아가 앞으로의 삶에 커다란 위안으로 다가온다. 그 정점에 이구아수 폭포가 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폭포수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나를 향해 힘찬 응원의 외침을 보내오는 듯하다.
압도적 존재감을 만나는 두 가지 방법

“Do Not Try to Describe It in Your Voice(당신의 언어로 묘사하려 애쓰지 마세요).” 이구아수 폭포에 설치된 푯말에 적힌 문구다. 그 어떤 수사적인 표현력을 동원하더라도 폭포의 위용을 제대로 묘사할 수 없을 거라는 확신, 그저 보고 느끼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애정 어린 당부가 행간에 읽힌다. 남아메리카 여행의 원픽이자 버킷 리스트에 빠지지 않는 이구아수 폭포는 하나가 아니다. 4.5km에 달하는 폭포의 끝과 끝 사이로 무수히 흐르는 물줄기의 총합이다. 최소 150개에서 많을 땐 300개의 크고 작은 물줄기가 낭떠러지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건기에 해당하는 5~8월은 물의 양과 폭포의 물줄기 개수는 줄어들지만 습도가 낮아 쾌적한 여행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다. 반면 우기에 속하는 11~2월은 어마어마한 흙탕물을 토해내는 폭포의 진가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다만 밀림 특유의 더위와 습기가 복병이다. 비가 많이 내리면 안전상의 이유로 진입이 통제되는 경우도 왕왕 생긴다.
원래 이구아수 폭포는 파라과이 영토에 속했으나 전쟁에 패하면서 오늘날 80%는 아르헨티나, 나머지 20%는 브라질 차지가 됐다. 참고로 이구아수 폭포는 현지어로 브라질은 ‘카타라타스 두 이구아수(Cataratas do Iguaçu)’, 아르헨티나에서는 ‘카타라타스 델 이구아수(Cataratas del Iguazú)’라 불린다. 여행자들은 편의상 포즈 두 이구아수(Foz du Iguaçu), 푸에르토 이구아수(Puerto Iguazú)라 구분하는데, 각각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이구아수 폭포 주변에 자리한 도시를 지칭한다. 혹 “어느 나라에서 본 풍경이 더 멋진가?”라 질문한다면, “둘 다”라는 다소 뻔한 답이 돌아온다.

두 나라 모두 서로 다른 매력의 전망을 자랑한다. 브라질 방면은 마치 병풍처럼 펼쳐진 파노라마 뷰를 감상하기 좋다. 산책로도 잘 정비된 편이라 도보로 4시간 남짓이면 웬만한 스폿은 다 누빌 수 있다. 특히 헬기 투어는 브라질 쪽에서만 즐길 수 있는 스펙터클한 체험이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방대한 규모만큼이나 볼거리가 풍성하다. 폭포를 따라 수많은 산책로가 조성돼 있어 마치 밀림 한복판을 탐험하는 기분이다. 물보라 세례를 받을 만큼 폭포 코앞까지 접근할 수 있는 점도 장점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아르헨티나는 악마의 목구멍(La Garganta do Diablo)이 하이라이트다. 이구아수 폭포 전체 유량의 50%에 육박하는 물이 악마의 목구멍, 단 한 곳에서 쏟아져 내린다. 80m 높이에서 끝없이 아래로 자유낙하 하는 폭포수는 주변의 소음을 일거에 집어삼킬 만큼 파괴적이고 웅대하다.
빨려 들어갈 듯한 두려움

넓어도 너무 넓은 탓에 아르헨티나 이구아수 폭포 국립공원은 여행객을 위한 야외 열차가 정글을 가로지른다. 공원 입구의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무료 티켓을 받아 열차에 오르면, 상행선 종착역인 악마의 목구멍(Garganta del Diablo)까지 20분이면 충분하다. 악마의 목구멍을 먼저 감상한 뒤 상위 산책로(Circuito Superior)와 하위 산책로(Circuito Inferior)를 차례로 걸으며 둘러보는 게 최상의 루트다. 하지만 열차에 탑승하기 전, 반드시 체험해봐야 할 게 보트 투어다. 전속력으로 폭포를 향해 달리는 보트에 몸을 싣고, 쉴 새 없이 낙하하는 물줄기에 흠씬 두들겨 맞다 보면 그야말로 도파민 터지는 짜릿함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사방이 뻥 뚫린 초록색 야외 열차가 정글을 헤치며 최종 목적지인 악마의 목구멍에 다다랐다. 발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철제 산책로를 따라 온화한 분위기의 강물을 감상하며 걷기를 20분, 굉음이 왕왕 울리기 시작했다. 자욱한 물보라와 함께 악마의 목구멍이 위험천만한 자태를 드러냈다. 80m 높이에서 12개의 폭포가 한데 뒤엉켜 초당 6만 톤의 물을 집어삼키는 광경은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다. 전망대에서 폭포까지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서 물보라에 눈을 뜨기도 힘들다. 마치 현실의 모든 걱정과 근심이 세상의 저편으로 몽땅 사라져버리는 듯하다. 사념에 잠긴 머릿속이 말끔히 정리되는, 일종의 해방감이 보상처럼 주어진다. 하지만 ‘악마’라는 이름처럼, 사방에서 떨어지는 폭포를 보고 있자면 깊숙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두려움과 공포심이 스멀스멀 차오른다. 1분을 바라보면 근심이 사라지지만 30분을 바라보면 영혼을 빼앗길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허튼 말이 아님을 실감하며 쉬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렸다.
상위 산책로는 짙푸른 숲을 배경으로 하얗게 부서지는 물줄기가 병풍처럼 늘어선 풍경이 한눈에 담기는 코스다. 폭포마다 내걸린 크고 작은 무지개가 깜짝선물처럼 반갑게 맞이한다. 가파른 철제 계단을 따라 걸으며 폭포를 아래서 위로 올려다볼 수 있는 하위 산책로는 폭포 하나하나의 위엄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 코아티(긴코너구리)와 두툼한 부리와 알록달록한 깃털이 매력적인 토코투칸 같은 희귀 동식물을 직접 마주할 수 있는 행운도 밀림 탐험의 즐거움 중 하나다.
이토록 위대한 풍경이란, 살타

아르헨티나 북부에는 자연이 빚은 놀라운 걸작이 이구아수 폭포 외에도 셀 수 없이 많다. 안데스산맥을 지붕 삼아 칠레, 볼리비아와 국경을 맞댄 살타(Salta)는 아르헨티나 북부 여행의 중심이 되는 도시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날을 상징하는 7월 9일 광장(Plaza 9 de Julio)을 중심으로 고풍스러운 유럽식 건축물과 잉카문화의 흔적이 공존하고, 따뜻한 마테차 한 잔을 마시며 차분한 여유를 즐기기 좋다.
살타에 머무는 동안 여행자들은 근교로 투어를 떠나기 바쁘다. 대표적으로 남미의 그랜드캐니언이라고 불리는 우마우아카 협곡(Quebrada de Humahuaca) 투어와 눈부신 소금 사막을 내달리는 살리나스 그란데스(Salinas Grandes) 투어, 와인 산지를 둘러보는 카파야테(Cafayate) 투어가 유명하다. 이른 아침 살타를 출발한 우마우아카 협곡 투어 버스가 가장 먼저 정차한 곳은 푸르마마르카(Purmamarca)다. 사막 특유의 뜨겁고 건조한 기후에 순응하듯, 마을 건물들은 하나같이 작고 귀여운 미니어처를 연상시킨다.

소박한 정취의 마을을 지나 굽이굽이 산길을 올라가면 전망이 확 트이는데, 오르노칼(Hornocal) 전망대에서 특별한 산세를 눈에 담을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일곱 빛깔 언덕(Cerro de los Siete Colores)’이다. 오랜 기간 다양한 광물과 퇴적물이 시간차를 두고 쌓여 서로 다른 지층을 형성한 것으로, 그 풍경이 마치 알록달록 무지개를 채색해놓은 듯하다. 현지인들은 안데스 여인들이 입는 전통 치마를 닮았다고 묘사한다. 푸르마마르카를 떠나 도착한 최종 목적지인 우마우아카 협곡은 꼬불꼬불한 도로를 따라 아찔한 곡예 운전을 하며 올라가야 한다. 차창 밖으로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고원과 두 눈에 다 담기지 않을 만큼 웅장한 협곡이 끝없이 펼쳐지는 장관이 이어진다.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의 명성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살리나스 그란데스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소금 사막이다. 설원을 방불케 하는 살리나스 그란데스는 가이드를 동반해야만 입장이 가능한 보호 구역이다. 건기(5~12월)에는 순백의 대지와 광활한 창공이 선명히 대비되는 장관이, 우기(1~3월)에는 거울처럼 말갛고 투명한 소금 호수로 변신하며 숨 막히는 절경을 자랑한다. 살타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붉게 물든 협곡과 바람이 조각한 거대한 바위 형상들로 둘러싸인 카파야테에 닿는다. 하나하나가 자연의 예술품이다. 메마른 대지의 삭막함과는 정반대로 카파야테는 고산지대 와인 성지로 불릴 만큼 넓은 포도밭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재배되는 와인은 깊은 풍미와 강한 과일 향이 매력적이다. 자연이 빚은 협곡을 두 발로 직접 거닐고, 인간의 손길로 키워낸 와인을 음미할 수 있는 경험은 오로지 카파야테에서만 누릴 수 있다.
아르헨티나 북부를 여행하는 동안 육체는 고될지라도 정신은 또렷해지고 영혼은 풍요롭게 빛났다. 인간의 언어로는 형용할 수 없는 신성하고 경이로운 대자연의 품 안에서 원 없이 위로받고 치유받는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