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정원을 가꾸는 즐거움 식물 전문가 권지연
도심 한복판 잘 꾸며진 온실에서의 만남.
5층 건물 꼭대기, 철문을 열자 다른 세상이 나타났다. 햇빛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온실 안에는 싱그러움이 가득하다. 쌀쌀하고 삭막했던 바깥이 전혀 생각나지 않을 만큼 순식간에 포근한 공기와 푸릇한 식물, 기분 좋은 향기가 품속으로 안긴다. 서울에 살며 쉽게 갖기 힘든 아담하지만 알찬 공간이다. 탐나는 온실을 꾸민 위드플랜츠 권지연 대표와 초록에 둘러싸여 이야기를 나눴다.
식물이 취미가 되는 순간
권지연 대표는 식물과 함께하는 일을 하고 싶어 조경학과에 진학해 꽤 오랫동안 공부를 했다. “대학원생일 때 화분 하나와 정원 사이의 어떤 지점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식물을 키울 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직장 생활을 하면서 계획을 구체화해 지금의 위드플랜츠를 창업했습니다.” 위드플랜츠 대표로서 그가 하는 업무는 온실 속 식물의 종류처럼 다양하다. 정원 컨설팅을 해주는 조경 디자이너, 가드닝 수업의 선생님, 식물 관련 강연의 강연자, 그리고 작년 말 발행한 책 <취미는 식물>의 작가이기도 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식물을 비롯한 가드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플랜테리어로 꾸민 카페, 백화점은 물론 집에도 다양한 식물을 들인 식집사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요즘. 권지연 대표 역시 2014년 위드플랜츠를 시작한 이후 달라진 대중의 인식을 매년 실감하고 있다. “특히 최근 2~3년 사이 식물과 관련된 수요가 더 많아진 것 같아요. 창업 초창기 고객의 연령대가 30~40대 정도였다면 지금은 구매는 물론 가드닝 수업도 20대가 훨씬 많아요. 또 과거에는 국내 화분 브랜드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는데 요즘은 종류가 굉장히 다양해졌어요.” 전례 없는 팬데믹을 겪으며 많은 이가 자연을 대체할 임시방편으로 식물을 집 안으로 들이기 시작했다. 화분 하나가 두 개가 되고, 세 개가 되는 사례를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자연을 무의식적으로 찾게 된다고 생각해요. 주말마다 한강이나 공원을 방문하고 캠핑을 떠나는 이유와 비슷하죠. 자연을 가까이하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 바로 식물을 키우는 일이에요. 앞으로도 꾸준히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 같아요.”
권지연 대표 역시 작업실은 물론 집에서도 50여 종의 식물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반려동물처럼 서로를 돌봐주는 반려식물과의 삶은 만족스럽다. “식물 덕분에 매일 ‘예쁘다’라는 말을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내뱉는 일상이 좋아요. 식물이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관심을 갖고 지켜보면 조금씩 변하거든요. 작은 변화를 찾는 즐거움도 굉장히 커요. 정성 들여 키웠는데 새잎이 나면 기분이 너무 좋죠. 그러다 새로운 화분을 하나 더 사게 되고, 잘 모르니까 공부를 하면서 식물에 대해 알아가고 즐기는 일련의 모든 과정이 다른 취미 생활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꾸준한 관심의 풋풋한 보답
권지연 대표는 2022년 10월, 흙이 생각나는 포근한 브라운 컬러에 초록색 포인트가 눈에 띄는 표지의 책 <취미는 식물>을 출간했다. 2020년 시작한 ‘소셜플랜츠클럽’의 내용을 모아 재편집해 출간한 것. 소셜플랜츠클럽은 2020년 권지연 대표가 만들기 시작한 ‘플랜츠페이퍼’ 서비스다. A3 사이즈 종이에 하나의 식물을 주제로 식물이 담고 있는 이야기, 관리 방법, 플랜테리어 팁을 적어 우편으로 보낸다. “책은 소셜플랜츠클럽에서 다뤘던 순서대로 쉽고, 흔한 식물과 조금 까다로운 식물 등이 뒤섞여 있어요. 요즘에는 예쁘고, 마음에 들면 식물을 구매하잖아요. 하지만 집에서 키우기 어려운 식물은 금방 죽어버리는 경우도 많거든요. 소셜플랜츠클럽을 읽고 내가 데려온 식물의 기초 지식을 쌓아 건강하게 잘 키웠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게 됐습니다. 또 여인초, 몬스테라처럼 머릿속으로 어떻게 생겼는지도 그려지는 평범한 식물도 분명 매력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식물 교과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두툼한 책 안에 식물과 얽힌 에피소드부터 식물의 특성, 좋아하는 온도와 빛, 필요한 물의 양과 주의할 점까지 꼼꼼한 정보가 가득하다. 하다못해 새로운 가전제품도 설명서를 읽고 조립하거나 전원을 켜는데 살아 있는 식물을 데려오면서 찬찬히 알아갈 생각을 하지 못한 경험이 떠올랐다. “식물 초보라면 몬스테라, 셀렘, 고무나무처럼 평범한 식물을 가장 먼저 추천해요. 이 식물이 흔한 건 어디서든 잘 자라기 때문이거든요. 관리하기도 쉽고요. 이보다 앞서 식물을 잘 키우고 싶다면 가장 먼저 화분을 어디에 둘지 정해보세요. 그다음 공간을 읽어요. 해가 언제, 얼마나 들어오는지, 기온은 어떤지 살핀 다음 공간에 맞는 식물을 사는 게 가장 좋습니다. 알맞은 환경에서 자란 식물은 건강하고 오래 살 수 있어요.” 권지연 대표는 해가 잘 드는 온실에서 키우는 식물과 낮에도 밝지 않은 집에서 키우는 식물이 완전히 다르다고 이야기해줬다. 참고로 그의 집에 가장 많은 식물은 무던해서 어디서나 잘 자라는 스킨답서스라고.
다음은 식물의 신호를 읽을 차례다. “잎이 떨어지거나 힘이 없어 보인다는 이유로 물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요, 과습이어도 잎이 처질 수가 있습니다. 식물이 보내는 신호는 잎이 아니라 흙을 만져보면 알 수 있죠. 흙이 너무 축축하면 뿌리가 물을 빨아들이지 못해 죽기도 해요.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해주거나 선풍기를 틀어주는 것도 좋아요. 이파리가 살랑거릴 정도로 환기가 되어야 식물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흙을 잘 말리고, 건조해지면 물을 주면서 우리 집에 맞는 주기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침 혹은 저녁 잠깐의 시간을 할애해 식물을 들여다보면 푸르른 나의 반려식물은 튼튼한 줄기와 싱그러운 잎으로 화답한다. 조금씩 줄기를 뻗어 풍성해지는 걸 지켜보면서 얻는 안정감은 덤이다. 잘 자라나는 뿌듯함을 꾸준히 누리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지식이 필요하다. 내가 책임질 식물이 어떤 환경을 좋아하는지 공부하면 취미 생활은 더욱 즐거워진다.
권지연 대표는 책 작업으로 잠시 쉬었던 식집사들을 위한 소셜플랜츠클럽을 다시 시작할 예정이고, 앞으로 멋진 온실 공간에 여러 사람을 초대해 다양한 수업과 이벤트도 선보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