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서핑학교 서미희 대표
파도를 타고 바다를 달리는 서핑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대한민국 서핑 문화를 만들어온 서미희 대표와 스릴 넘치는 서핑의 세계, 아름다운 바다 이야기를 나눴다.
서핑 성지, 송정해수욕장

여름 바다와 부산. 두 단어의 조합만으로도 머릿속에 수많은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푸른 바다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청명한 하늘과 해변을 맴도는 갈매기까지. 누가 뭐래도 부산은 여름의 도시, 바다의 도시다. 부산에는 널리 알려진 해수욕장이 여럿이지만, 그중 송정해수욕장은 맑고 깨끗한 물과 얕은 수심으로 사계절 사랑받는 곳이다. 송정서핑학교 서미희 대표는 이미 30년 전 송정 바다의 가치를 알아봤다. 그는 한국 1세대 서퍼이자 송정을 서핑의 성지로 만든 장본인이다.
“국내에 있는 바다는 모두 가본 것 같아요. 사계절 내내 파도를 즐길 수 있는 바다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죠. 그렇게 발품을 팔아 발견한 곳이 송정이었어요. 남해 동부에 위치해 북동풍이 부는 겨울에도 좋은 파도가 만들어지고, 1년 내내 수온이 따뜻하죠. 사계절 서핑을 할 수 있는 곳은 송정해수욕장이 유일합니다.”
서핑을 시작한 후로는 파도를 읽기 위해 바다를 공부했다. 동호회 회원을 통해 외국의 인공위성 사진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국립해양조사원 자료를 비교하며 지형과 파장, 바람에 따른 파도의 모양과 세기를 분석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모은 데이터는 지난 2021년 우리나라 최초의 서핑 지수 개발에도 활용됐다.
“처음에는 너무 궁금해서 시작했어요. 틀림없이 바람이 들어오는데, 파도가 생기지 않으니 답답했거든요. 지금도 매일 바람의 시작점을 확인합니다. 먼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일수록 멋진 파도를 만들어내거든요. 송정 바다와 파도 관련해서는 제가 세계 1등이라고 자부합니다. 그만큼 열심히 공부했어요.”
서핑과의 운명적인 만남

어린 시절부터 운동신경이 남달랐던 서미희 대표는 학창 시절 펜싱 선수로 활동했다. 이후 테니스, 에어로빅, 수영 등 다양한 운동을 섭렵했고, 각종 스키대회에서는 금메달 20개를 획득할 정도로 기량이 뛰어났다. 윈드서핑에 매력을 느낀 뒤로는 동호회에 가입해 활동했는데, 국내에서 유일한 여성 윈드서퍼로 유명인사가 되기도 했다. 국내 윈드서핑 동호인 대회 여성부 1위를 열 번이나 할 만큼 실력도 출중했다.
“무언가에 꽂히면 뿌리를 뽑는 성격이라, 일단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해요. 뭘 하든 세계 챔피언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하거든요. 윈드서핑도 마찬가지였어요.”
윈드서핑을 평생의 업으로 삼겠다는 각오로 호기롭게 윈드서핑 숍을 열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장비도 비싼 데다 어린아이들은 할 수도 없고, 대중화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것. 파도가 수시로 밀려와 윈드서핑을 하기에는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렇게 고민이 깊어지던 중 서 대표의 눈에 번뜩이는 무언가가 들어왔다. 파도가 높았던 10월의 어느 날, 송정해수욕장에서 서핑을 즐기는 외국인이었다.
“보는 순간 ‘저거다!’ 하고 생각했어요. 아이부터 노인까지 할 수 있는 스포츠라는 걸 알아봤거든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물속에 뛰어들어 외국인에게 다가갔죠. 우리 집에 데려와 2박 3일을 지내게 하면서 서핑에 대해 묻고 또 물었어요. 대체 어떤 스포츠인지 궁금했거든요.”
서핑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한 시절이었다. 서핑 관련 자료나 배울 수 있는 곳이 있을 리 만무했다. 서 대표는 그날 이후 홀로 서핑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밥 먹는 시간을 빼고는 늘 보드 위에 섰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파도를 타며 독학으로 서핑을 연습한 세월만 10년. 2008년 제주도에서 열린 ‘국제서핑대회’에서 여성부 1위, 일본에서 열린 ‘서퍼 걸 서핑 콘테스트’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그의 나이 43살에 이룬 쾌거이자 대한민국 서핑 역사의 시작이었다.

서핑과 함께한 삶, 바다와 함께 꾸는 꿈

송정서핑학교는 우리나라 서핑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상징적인 장소다. 지금의 서핑 문화가 자리 잡기까지 서 대표가 걸어온 길은 곧 역사가 됐다. 한때 서핑의 선구자로 알려지며 꽤 큰돈을 벌었던 적도 있지만 고스란히 서핑 발전에 투자했다. 제자들의 교육을 위해 해외로 서핑 유학을 보내는가 하면, 유명 코치를 초청해 배움의 기회를 마련했다. 또 여름 성수기엔 일반 관광객을 위해 백사장 가득 파라솔이 들어서는데, 일부 구역을 한 시즌 내내 사들여 서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게 좋은 선수를 양성하고, 올바른 서핑 문화 정착을 위한 것이었다.
서 대표의 또 다른 이름은 바다 지킴이다. 하루에 세 번, 송정해수욕장에서 쓰레기를 주우며 매일 비치클린을 실천한다. 송정해수욕장은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군부대 관할 지역으로 하계 훈련장과 휴양 시설이 설치돼 있었다. 백사장엔 버려진 병과 각종 쓰레기, 캠핑과 낚시용품이 모래와 뒤섞여 있었고, 서 대표의 어린 딸이 날카로운 물체에 찔려 열이 42℃까지 오르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해마다 서핑 숍이 늘어나고, 서퍼들도 많이 찾는데 아무도 바다 환경에 관심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무작정 바다로 나가 청소를 시작했죠. 물때에 맞춰 수시로 바닷가에서 쓰레기를 주운 지 벌써 30년이 넘었습니다.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기에 제가 나선 거죠. 바다는 아이들의 놀이터기도 하니까요.”·
엄마를 따라 두 자녀도 서핑 선수로 성장했다. 뱃속에서부터 서핑을 배운 이나라·이도운 선수다. 어린 시절부터 송정해수욕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자연스럽게 서핑을 접했고 파도를 배웠다. 2012년부터는 발리에서 본격적으로 서핑을 공부하며 국가대표로 성장했다. 특히 2017년부터 국가대표로 활동 중인 이나라 선수는 2026년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한편, 한국체육대학교에 입학해 지도자의 꿈을 키우는 중이다. 서 대표가 대한민국 서핑의 문을 열었다면, 그의 자녀와 제자들이 탄탄한 길을 내어가고 있는 셈이다.
서미희 대표는 15년 넘게 지역 보육원 아이들을 대상으로 여름마다 서핑 교육을 실시해왔다. 그가 가장 의미 있게 생각하는 일이기도 하다.
“서핑을 하면 아이들의 표정에 생기가 돌아요. 눈을 반짝이면서 제게 다가와 매일 서핑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죠. 바다만큼 좋은 놀이터가 없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서핑을 접했으면 좋겠어요. 놀면서 익히고 열심히 배워서 서핑을 오래오래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그중 올림픽 출전 선수까지 나온다면 더욱 좋고요. 먼 훗날 올림픽 메달을 들고 찾아와 제 목에 걸어주는 상상을 하곤 합니다. ”
우리나라 서핑의 역사를 만들어온 서미희 대표의 시선은 언제나 바다를 향해 있다. 더 많은 사람이 바다 환경에 관심을 갖기를 바라는 희망, 아이들이 마음 놓고 뛰놀며 서핑을 즐길 수 있길 바라는 소망, 서핑에서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나오는 꿈을 품은 그의 가슴은 여전히 뜨겁다. 28년 전 송정해수욕장에서 처음 서핑보드 위에 섰던 그날처럼.
